다큐멘터리에 자주 등장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들. 누구나 한번쯤은 시선을 줘봤을 법한 흥미로운 꺼리 이긴하지만, 그때마다 느끼는건 과연 인간이 어떻게 탄생한것인지에 대한 갈증은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는겁니다. 지구는 이미 인간의 발자국으로 가득차있습니다. 구석구석 인간의 살결이 닿지않은 곳은 거의 없죠. 인간이 있는곳, 그곳은 과거의 자취는 시간과 함꼐 사라져버리고, 지금 그리고 현재의 인간의 삶을 위해서 만들어진 환경만이 존재합니다. 먹고 사는것이 인간들의 운명이기에 어쩔수 없는, 그리고 피할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뒤덮힌 발자국 아래, 인간의 과거의 자취를 찾는건 너무나도 힘든일일겁니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공룡처럼 거대한 뼈를 남긴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과거에 개체수가 많았던것도 아니고.. 그나마 몇 안되는 그들의 삶의 흔적은 시간의 흐름속에 떠내려 가버렸으니... 인간에 대한 다큐를 볼때마다 느끼는 타는듯한 갈증은 아마도 이러한 시간의 벽 때문인게 아닐까 싶습니다.
머나먼 과거, 인간은 어떻게 진화해온걸까요? 아니 애초에 어떻게 탄생한걸까요? 인류가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는 진화론은 다들 잘 아실겁니다. 즉, 영장류에서 진화한게 인간이라는거죠. 수많은 과학적 발견들과 과학자들의 피땀어린 노력이 그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만들어 줬지만, 석연치 않은건, 과연 우리가 생체학적인 진화만 한건가 라는겁니다.
과거의 원시인들은 지금보다 지능이 떨어진다거나, 또는 낮은 수준의 삶으로 인하여서 우리보다 뒤떨어져있었다 라는 생각의 함정에 빠지기 떄문입니다. 하지만 스핑크스나 피라미드가 무려 3000년도 전에 지어졌다는 사실을 보자면, 그들의 기본적인 지능이나 생각하는 힘이 그렇게 뒤떨어지진 않는것같습니다. 원주율이나 지구의 반지름 등등.. 피라미드를 아시는 분들은 그속에 담겨있는 수많은 과학적 지식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좀더 공평하게, 왜 그들은 그 당시에 그렇게 높은 지식, 즉 지금의 우리와 같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게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은 왜 소수에 지나지 않았는지 등등에 대해서 생각해본 연후에, 인간의 진화 라는 점을 좀더 새롭게 볼 필요가 있는것같습니다.
인도나 이집트에서는 소수의 지식인들이 종교장을 맡으면서, 언어라는걸 독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천문과 수학에 밝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수많은 그들의 종교에 대한 경전들은, 그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해줬으리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반면 그들외의 다른 사람들은 어땠을까요? 대다수는 노예로 살았고, 노예가 아닌 경우에도 그들은 먹고 사는 "현실문제"에 속박당해 평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소수의 지식인이었던 종교인들, 그리고 그들에게 항상 지배당했던 하층민들, 이둘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언어"입니다. 높은 지식을 가지고 있던 그들은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능케 했던,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낸것이죠. 일반인들의 단순하고 쾌락적인 언어보다 한층더 차원이 높아진 "문어적"인 언어는 그들에게 더욱더 높은 밀도의 소통을 가능케 했고, 그것이 그들에게 지식과 권력을 부여한겁니다. 세상을 올바로 깨닫는건, 그것은 쾌락적인 언어의 울타리 안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했던겁니다.
결국 인간이란, 동물에서 사람으로 진화하면서 언어라는 도구를 얻은후에, 또다른 언어를 얻게되면서 다시한번 진화했다고 볼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데카르트의 얇은 책 하나가 유럽의 역사를 뒤흔들어 놓은것은, 그의 책이 쉽고 이해하기 좋은 감각적인 언어가 아니라, 심층적인 사고가 가능한 문어로 적혔기 때문이었습니다. 매우 깊은 소통은, 매번 반복만 하던 동양의 역사와는 다르게 서양의 역사를 통째로 바꿔놓았고, 그리고 지금 그 덕분에 나, 그리고 우리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인간이 말, 또는 언어를 깨우치고 나서 생각을 하게된것 같습니다. 왜냐면 말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의사소통을 할수 있었고, 의사소통이 일어나기 위해선 결국 서로가 뭔가를 주고 받기 위해서 생각을 해야만 하거든요. 결국 실질적으로 인간의 생각은 말의 탄생 이후에나 나타난겁니다. 그 전에도 그들은 다양한 생각을 하곤 했고 그 때문에 말이라는 도구가 생긴것이긴 하지만, 말을 하는 행동 그것이 존재해야만 생각 또한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이죠. 말과 생각은 마치 무한대로 수렴하는 무한 수열과 같습니다.
이러한 논리에 블로그를 집어 넣는다면 놀라운 결과물이 나옵니다. 즉 블로그라는것 또한 새로운 언어라는것이죠. 감각적인 언어에서 심층적인 언어로 인류가 내면적으로 진화했다고 본다고 하더라도,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은 전자에만 노출되거나 또는 그것만 사용해본 경험밖엔 없는 "미개인"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들은 매일매일 삶의 쳇바퀴속에서 빠져나오기 힘들기 때문이죠.
하지만 과거 소수 종교장이 독점했고, 지금은 일부 지식인들과 언론들이 그역할을 그대로 대신하며 또다시 독점하고 있는, 심층적이고 깊은 "문어"적인 언어를 수많은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써볼수 있는 기회를 블로그라는 툴에서 좀더 넓고 깊은 소통이 가능해졌으므로, 이제 드디어 그 권력의 중심이자 사회를 올바로 바라볼수 있는, 또는 좀더 깊은 생각을 할수 있는 힘과 권력이 일반인들에게 부여된것같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블로그에 정해진양 만큼의 생각을 채워넣기만 하는 수동적인 방식이 아니라, 하얀 바탕에 그림을 직접 그려나가면서, 덧칠도 하고 조금씩 수정도 해나가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즉, 그들은 글을 씀과 동시에 더욱더 깊은 소통의 도구인 심층적인 언어로 생각을 해 나가는것이 바로 블로깅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블로깅을 "글틀"이라는 제목으로 단지 도구적인 특성만 부여할게 아니라, "말 2.0"이나, 또는 "큰 말" 등의 이름처럼 말 그자체가 진화했다 라는 함축적인 제목이 더 적당할지도 모릅니다.
니체가 초인이라는 이야기를 꺼낸걸 조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나찌와 얽히면서 매우 끔직한 이야기로 변해버리긴 했으나, 위에서 제가 꺼낸 이야기들에 초인이라는걸 조합하면 재밋는 결과가 나옵니다. 블로그는 위에서 제가 말한대로 새로운 언어를 지칭하므로, 초언어라고 대입해보겠습니다.
꽤나 흥미롭죠? 인간이란, 사실 인간에 의해서 지배되는게 아니라 인간이 뿌려놓은 언어에 의해 지배된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언어 그자체가 진일보한 새로운 언어로써의 블로그라는건 정말 놀라운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조금더 멀리 끌어보자면, 블로그라는건 프로이트가 말하는 "자아" 그자체를 말하는것일지도 모르겠네요.
-> 발아점 으로 가기
그렇게 뒤덮힌 발자국 아래, 인간의 과거의 자취를 찾는건 너무나도 힘든일일겁니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공룡처럼 거대한 뼈를 남긴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과거에 개체수가 많았던것도 아니고.. 그나마 몇 안되는 그들의 삶의 흔적은 시간의 흐름속에 떠내려 가버렸으니... 인간에 대한 다큐를 볼때마다 느끼는 타는듯한 갈증은 아마도 이러한 시간의 벽 때문인게 아닐까 싶습니다.
머나먼 과거, 인간은 어떻게 진화해온걸까요? 아니 애초에 어떻게 탄생한걸까요? 인류가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는 진화론은 다들 잘 아실겁니다. 즉, 영장류에서 진화한게 인간이라는거죠. 수많은 과학적 발견들과 과학자들의 피땀어린 노력이 그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만들어 줬지만, 석연치 않은건, 과연 우리가 생체학적인 진화만 한건가 라는겁니다.
과거의 원시인들은 지금보다 지능이 떨어진다거나, 또는 낮은 수준의 삶으로 인하여서 우리보다 뒤떨어져있었다 라는 생각의 함정에 빠지기 떄문입니다. 하지만 스핑크스나 피라미드가 무려 3000년도 전에 지어졌다는 사실을 보자면, 그들의 기본적인 지능이나 생각하는 힘이 그렇게 뒤떨어지진 않는것같습니다. 원주율이나 지구의 반지름 등등.. 피라미드를 아시는 분들은 그속에 담겨있는 수많은 과학적 지식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좀더 공평하게, 왜 그들은 그 당시에 그렇게 높은 지식, 즉 지금의 우리와 같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게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은 왜 소수에 지나지 않았는지 등등에 대해서 생각해본 연후에, 인간의 진화 라는 점을 좀더 새롭게 볼 필요가 있는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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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나 이집트에서는 소수의 지식인들이 종교장을 맡으면서, 언어라는걸 독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천문과 수학에 밝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수많은 그들의 종교에 대한 경전들은, 그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해줬으리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반면 그들외의 다른 사람들은 어땠을까요? 대다수는 노예로 살았고, 노예가 아닌 경우에도 그들은 먹고 사는 "현실문제"에 속박당해 평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소수의 지식인이었던 종교인들, 그리고 그들에게 항상 지배당했던 하층민들, 이둘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언어"입니다. 높은 지식을 가지고 있던 그들은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능케 했던,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낸것이죠. 일반인들의 단순하고 쾌락적인 언어보다 한층더 차원이 높아진 "문어적"인 언어는 그들에게 더욱더 높은 밀도의 소통을 가능케 했고, 그것이 그들에게 지식과 권력을 부여한겁니다. 세상을 올바로 깨닫는건, 그것은 쾌락적인 언어의 울타리 안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했던겁니다.
결국 인간이란, 동물에서 사람으로 진화하면서 언어라는 도구를 얻은후에, 또다른 언어를 얻게되면서 다시한번 진화했다고 볼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데카르트의 얇은 책 하나가 유럽의 역사를 뒤흔들어 놓은것은, 그의 책이 쉽고 이해하기 좋은 감각적인 언어가 아니라, 심층적인 사고가 가능한 문어로 적혔기 때문이었습니다. 매우 깊은 소통은, 매번 반복만 하던 동양의 역사와는 다르게 서양의 역사를 통째로 바꿔놓았고, 그리고 지금 그 덕분에 나, 그리고 우리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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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인간이 말, 또는 언어를 깨우치고 나서 생각을 하게된것 같습니다. 왜냐면 말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의사소통을 할수 있었고, 의사소통이 일어나기 위해선 결국 서로가 뭔가를 주고 받기 위해서 생각을 해야만 하거든요. 결국 실질적으로 인간의 생각은 말의 탄생 이후에나 나타난겁니다. 그 전에도 그들은 다양한 생각을 하곤 했고 그 때문에 말이라는 도구가 생긴것이긴 하지만, 말을 하는 행동 그것이 존재해야만 생각 또한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이죠. 말과 생각은 마치 무한대로 수렴하는 무한 수열과 같습니다.
이러한 논리에 블로그를 집어 넣는다면 놀라운 결과물이 나옵니다. 즉 블로그라는것 또한 새로운 언어라는것이죠. 감각적인 언어에서 심층적인 언어로 인류가 내면적으로 진화했다고 본다고 하더라도,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은 전자에만 노출되거나 또는 그것만 사용해본 경험밖엔 없는 "미개인"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들은 매일매일 삶의 쳇바퀴속에서 빠져나오기 힘들기 때문이죠.
하지만 과거 소수 종교장이 독점했고, 지금은 일부 지식인들과 언론들이 그역할을 그대로 대신하며 또다시 독점하고 있는, 심층적이고 깊은 "문어"적인 언어를 수많은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써볼수 있는 기회를 블로그라는 툴에서 좀더 넓고 깊은 소통이 가능해졌으므로, 이제 드디어 그 권력의 중심이자 사회를 올바로 바라볼수 있는, 또는 좀더 깊은 생각을 할수 있는 힘과 권력이 일반인들에게 부여된것같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블로그에 정해진양 만큼의 생각을 채워넣기만 하는 수동적인 방식이 아니라, 하얀 바탕에 그림을 직접 그려나가면서, 덧칠도 하고 조금씩 수정도 해나가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즉, 그들은 글을 씀과 동시에 더욱더 깊은 소통의 도구인 심층적인 언어로 생각을 해 나가는것이 바로 블로깅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블로깅을 "글틀"이라는 제목으로 단지 도구적인 특성만 부여할게 아니라, "말 2.0"이나, 또는 "큰 말" 등의 이름처럼 말 그자체가 진화했다 라는 함축적인 제목이 더 적당할지도 모릅니다.
니체가 초인이라는 이야기를 꺼낸걸 조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나찌와 얽히면서 매우 끔직한 이야기로 변해버리긴 했으나, 위에서 제가 꺼낸 이야기들에 초인이라는걸 조합하면 재밋는 결과가 나옵니다. 블로그는 위에서 제가 말한대로 새로운 언어를 지칭하므로, 초언어라고 대입해보겠습니다.
블로그, 즉 초언어는 현실언어의 불완정성이나 제한을 극복한 이상적 언어이다.
블로그, 즉 초언어라는 것은 인간이 자기를 초극해 나아가야 할 목표이고, 영겁(永劫)으로 회귀(回歸)하는 운명을 참고, 신을 대신하는 모든 가치의 창조자로서 풍부하고 강력한 생(生)을 실현한 언어이다.
블로그, 즉 초언어의 구체상(具體像)은 그리스도교에서의 신(神)에 대신하는 인류의 지배자이며, 민중은 그언어의 복종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엔사이버 백과사전
블로그, 즉 초언어라는 것은 인간이 자기를 초극해 나아가야 할 목표이고, 영겁(永劫)으로 회귀(回歸)하는 운명을 참고, 신을 대신하는 모든 가치의 창조자로서 풍부하고 강력한 생(生)을 실현한 언어이다.
블로그, 즉 초언어의 구체상(具體像)은 그리스도교에서의 신(神)에 대신하는 인류의 지배자이며, 민중은 그언어의 복종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엔사이버 백과사전
꽤나 흥미롭죠? 인간이란, 사실 인간에 의해서 지배되는게 아니라 인간이 뿌려놓은 언어에 의해 지배된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언어 그자체가 진일보한 새로운 언어로써의 블로그라는건 정말 놀라운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조금더 멀리 끌어보자면, 블로그라는건 프로이트가 말하는 "자아" 그자체를 말하는것일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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