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과 하나가 있다. 주먹보다 큰 크기에 꽁지 주변엔 불그스름한 색깔이 투박하게 퍼져있고, 아래로 갈수록 은은한 푸른색의 줄무늬가 마치 달콤한 사과즙마냥 아래로 흘러내리는 듯한 모습이다. 이렇게 맛있게 생긴 사과를 두고 두명이 싸우고 있다. 한명은 이 사과를 보고 말하길, 사과는 먹으면 건강에 좋다 라고 말하고 있고, 또다른 한명은 사과는 건강에 해롭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둘의 논쟁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 둘의 의견은 서로 대립하고 있는것 같지만, 실상은 둘다 옳은 말이다. 인간의 몸은 오전 시간대에 신진대사가 활발 하므로, 포도당이 풍부한 사과를 먹으면 두뇌에 좋은 효과를 주지만, 역으로 저녁시간대에는 정반대로 되어서 그것들이 두뇌로 가기보다는 몸에 지방으로 축척되어버릴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성 댓글에 대한 논쟁도 위의 사과 논쟁과 같다. 경우에 따라서 다르다는것이다. 우선 인터넷이란 그 자체가 익명성을 띈다. 싸이월드에서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포털뉴스에 댓글을 올린다 하더라도, 그 자체는 익명이다. 왜냐면 수많은 동명이인이 존재하기 때문인데다, 어느정도 가명을 쓸확율이 존재하기 떄문. 이건 오프라인에서 우리가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는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이다. 누군가가 스스로의 이름을 밝히더라도, 그것이 첫째로 실제로 증명되지 못하거나, 둘째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가 스스로 밝힌 이름을 통해서 소통이 일정기간 성립되지 않는다면, 그의 이름은 실명이 아닌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가진다.
그렇다면 인터넷에선 어떤것이 실명일까? 단지 세글자의 이름만 올린다고해서 그가 실명이 되진 못하는것이기에, 오프라인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그룹에서 속하는 온라인상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어떤것이 온라인상의 "실명"이 될수 있을까?
우선은 스스로의 실체가 존재해야 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데카르트의 말처럼, 온라인상에서 우린 정말로 생각해야만 존재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게시판을 통해서 뭉쳐지며, 댓글로 발산되고, 블로그로 집약된다. 그리고 그 생각들이 실체를 형성하면서, 우리가 닉네임을 부르면서 ~님 이라 부르게 되는순간, 새로운 존재가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그 존재는 매우 나약하다. 누군가가 사칭으로 빼앗아 버릴수도 있고, 삭제당할수 있으며, 가장 큰 문제점은 "시간"을 초월하지 못한다는것이다. 엄청난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그 존재는 시간과 함께 기억의 망각속으로 사라지게되는 운명을 타고난다. 이것이 집단적인 게시판의 한계이다.
하지만 블로그는 그렇지 않다. 수많은 개인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게시판은 아시아적인 집단공동체적인 성격을 띄는 반면에, 개인의 닉네임이 그 스스로의 이름이 되는 블로그의 경우, 스스로 존립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글잘쓰고 자료 잘 올려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성공하는(?) 게시판과는 다르게, 스스로 글을 올리고 스스로 관리해야 하는 것이 블로그이다. 그리고 그 책임 또한 자신에게 돌아오게된다. 게시판의 경우 여러사람이 뭉치는 곳이었지만, 블로그는 자신만의 글이 모이게 되므로, 하나의 닉네임아래 수많은 생각들이 집약된다. 그리고 시간을 초월하는 진정한 "개인"이 탄생하게된다.
결국 블로그 자체가 글의 시작점에서 말한 "실명"과 다름없다는게 내 생각이다. 싸이월드나 티스토리, 네이버 등등.. 대다수의 한국인이 사용하는 대규모 싸이트들은 이미 실명 확인제를 거친상태이다. 그래서 싸이월드가 세글자의 실제 실명을 쓴다고 해도, 특별히 다른점은 없다. 결국 중요한것은, 닉네임아래 그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집약되어있느냐 이고,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과 얼마나 많은 "관계"활동을 펼쳐온건지, 또는 웹상의 "사회적인" 교류를 해왔는지가 "진정한 실명"을 판별하는 기준점이 된다.
소통에서 이렇게 실명 이라는 여부를 따져야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왜냐면 사회에서 실명을 내놓고 사람들과 소통할때 책임감이 따르는것 처럼, 웹상에서도 똑같은 책임감이 따르는 사회적 제약이 있어야 비로소 실명과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책임감 없는 누군가와는 소통이라는 꼬리표는 어울리지 않는다. 소통의 최소 요구점은, 바로 서로가 서로의 메세지를 이해한다는 것인데, 책임감 없는 존재는 그러한 최소한의 조건도 충족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뭐라고 말을 한건지도 모르면서 그 사람에게 미친듯이 떠들어 대는것은 소통일까? 아니다. 그건 개지랄일 뿐이다. 아니, 개지랄이 아닐수도 있지만, 최소한 그는 소통을 하고 있는건 아니라고 말할수 있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못하면서, 타인에게 뭔가 메세지를 던지려 한다는건, 소통이 아니라 상대방을 기만하고 무시하는 행패이다. 우리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이명박과 같다. 익명의 그들은 스스로가 만든 명박산성속에 갇혀져 있는셈. 그들이 정말 소통하고 싶었고, 글을 이해하기 힘들다면, 최소한 모르겠으니 다시한번 설며해달라 라고 물어보는 겸손함을 가졌어야 하는것이다.
하지만 이런 겸손함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대다수의 익명 리플들이다. 그들은 제목이나 본문의 몇줄에 발끈해서 감각적으로 반응한다. 그들에겐 타인이 적은 개인적인 생각을 보고, 마치 야동의 야한 정사장면을 보고난뒤 자위하며 사정하는것과 다름없는, 감각정 배설 운동을 리플에다가 하고 있는것이다.
그리고 "웹상의 실명"을 가진 대다수의 블로거들은 위와 같은 행위에 분노하고, 또는 반발한다. 그들은 잘안다. 자신들이 가진 책임감을. 그리고 그들이 피땀 흘려 쌓아온 웹 에 대한 신뢰성을 말이다. 매일매일 그들의 생각을 담는 인터넷이, 무책임하고 감각적인 악성 리플에 오염된다면, 스스로가 자멸이라는걸 잘 알고 있다.
결국 블로거들이 말하는 "소통"은, 역설적이게도 소통 그자체에 대한 고찰이 전혀 진행되지 못한채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왜냐면 자신들 스스로는 충분히 "실명"에 가까운 인격적 존재인데, 그러한 자신들의 시각에서 익명의 리플들을 바라보고 있는것이다. 마치 고대인들도 원근법이 적용된 그림을 그릴줄 알거라고 착각하는것과 다를바 없는것이다.
그 블로거들 중에서 가장 황당한 경우는,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익명의 세계에서 익명의 댓글들이 소통 그차체라고 주장하는 궤변들이다. 이런 주장들은 자신들이 소통이 무엇인지 조차도 모른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무지하고 생각없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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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포털 댓글의 폐해, 최진실, 그리고 블로그
Tracked from 『한』가족 2008/10/05 21:02 삭제(표현상 존칭은 생략했음을 양해 바랍니다.) 끔찍하고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 발생했다. 며칠 전, 근 20년 동안 국민 스타로 활동하던 유명 연예인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주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자살을 선택한 원인이 한두가지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울 것이다. 순간적인 감정에 치우쳐 자살이라는 길을 선택하기는 했지만, 결국 이 충동적인 감정 또한 이전 과거의 사건부터 쌓여 온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최진실의 자살 원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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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블로그 댓글승인, 자기보호인가? 소통거부인가?
Tracked from j4blog 2008/10/06 15:37 삭제대부분의 블로그들이 댓글에 대한 정책을 개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 비로그인 댓글러, 로그인 댓글러 모두에게 댓글쓰기를 허용하고, 승인없이 바로 댓글이 남겨지는 형식입니다. 물론 승인 후 댓글이 남겨지게끔 운영을 하는 블로그도 몇 군데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블로그들이 개방적인 댓글 정책을 쓰는 이유는 대화와 교류에 대해 열려있는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좋은 댓글이건, 악플이건 모든 것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난 열라 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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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블로거는 블로그에 기록하는 글로 소통한다
Tracked from 김중태문화원 2008/10/08 22:47 삭제(1) 기록을 남기는 일은 역사를 초월한 소통 어떤 장인 또는 교수가 많은 지식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 지식을 책으로 내서 출간했다면 자신의 지식으로 독자와 공유하고 소통했다고 말할 수 있다. 독자의 편지를 받고 답장을 해야만 소통을 하는 것이 아니다. 책을 내지 않았다면 그 지식은 온전히 무덤 속으로 묻힐 지식이다. 자신이 보고들은 것을 머리 속에 묻지 않고 기록하고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큰 소통이라 할 수 있다. 나랏님의 하루를 꾸준하게 기록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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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댓글, 익명성을 바라보는 나의 입장
Tracked from 킬크로그 (killklog) 2008/10/10 21:40 삭제익명성... 참 좋은 겁니다. 살짝 뒤에 숨어서 무슨 말을 해도 잘 드러나지 않거든요. 저는 오늘 오전에 댓글때문에 심기가 조금 불편했습니다. 누구나 다 그렇잖아요. 자신이 주장하는 글에 동조하지 않으면 서운하기도 하고 만일 반박을 하거나 다른 주장을 하면 기분이 좋지만은 않을 겁니다. 제가 정확하게 속 사정도 잘 모르는 어떤 포털서비스에 대해 이리저리 비판만 하면, 해당 포털에 계시는 분 입장에서는 상황도 잘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서비스에 대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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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LieBe's B급 칼럼 #2] 성급한 독자들의 꼴값.
Tracked from LieBe's Graffiti 2008/11/23 22:05 삭제오랜 시간이 흘러서 다시금 소통을 준비하는 내게 있어 개인적으로 호감을 가지게 된 블로거가 셋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어떤 이슈를 바라보메 그 이슈의 코어만을 적절히 캐취하여 수만마디의 말보다 적절한 한 마디 위트로 나로 하여금 쓰러지지 않을수 없게 만드는 이승환님이고 그 코어를 직시하며 시퍼렇게 날선 비판과 함께 자기 검증의 글쓰기로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까지 공감케 만드는 민노씨가 그 중 하나이며 상당히 색다른 시각 - 혹은 일반적이지만 대중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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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존재하는 소통이란 합의가 아니라 강요의 성격을 띄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말을 받아들이면 소통이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불소통이라고들 하죠. 서로를 존중한 채 의견차이를 좁히려고 하기보다는 서로를 이기려고만 하죠. 특히 익명성 속에 숨은 소통은 이런 경향이 강합니다. 솔직히 이젠 소통이라는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하지만 그래도 소통을 포기할 수는 없겠죠. 이 모든게 더 나아지기 위한 시행착오라고 생각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
저 며칠 여행을 하고 돌아올 생각입니다. 지난 여름에 워낙 바빠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있었습니다. 가을이 오면 여행을 떠나려고 했었는데 이제야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여행을 다녀와 뵙겠습니다. :)
동감입니다. 익명성 댓글들은 소통이 아니라, 자신들의 목소리를
강압적으로 노출시키는데 그 목적이있죠.
마치 조중동이 수많은 양을 뿌려서 사람들에게 강압적인
노출로 그들의 생각을 퍼뜨리는것과 비슷합니다.
감자님 고생많이 하셨으니.. 푹쉬고 오세요.
저도 어딘가 여행이나 떠나고 싶어집니다.
가을이라서 그런건지.. -_ㅠ
군중 속에 감춰진 의견 표출은 자칫 책임감 없는 무의미한 배설물이 되기 쉽죠..
저도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참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적어도 내 실명은 아니지만 닉네임을 드러내고, 고정된 인터넷 주소에 내가 하고싶은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말씀대로 상대방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대화는 진정성있는 대화라고 보기 어렵겠죠.. 적어도 내가 그 상대방에게 다시 생각을 전할 통로는 알고 있어야 진정한 소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어쨌거나 최근 일련의 사건은 너무 슬프게 합니다.
마래바 님과 저는 많이 통하는 구석이 있는것같네요
최소한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또는 들을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아니면 그럴려고 노력하는 자세라든지...
언제부터 세상이 이렇게 각박해졌는지..
그 역사조차 알길이 없는 시간의 섬에 빠져버린
대한민국의 웹이 한탄스럽습니다.
그러니까 익명성 리플 자체인가요? 익명성 악플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만약 전자라면 그것이 소통이 아니라함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가령 제 블로그에 링크없이 익명으로 누군가가 포스트 내용에 대해 진지하게 의견을 토로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에 반응했구요...두 사람은 서로를 잘 모르지만 하나의 주제, 그 포스트가 담고 있는 이야기에 대해 소통했다고 여깁니다. 소통 자체가 말씀하셨듯이 어느 정도의 온라인 아이덴티티를 담고 있어야 더욱 의미가 있겠지만 시초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제가 보기엔 상대방의 아이덴티티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대화자체에 진정성이 담길 수 있고 또 그것만으로도 기본적 소통의 유의미함을 가졌다고 봅니다..
익명성 리플 자체입니다. 익명성 리플로 진지하게 토로한다고해서,
그것이 익명성 악플과 다름순 없습니다.
익명성 악플 또한 공감할수 있고 소통할수 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익명 리플 그자체의 존재만을 볼게 아니라,
속성을 관통하는 통찰력이 필요한것같습니다.
감각의 배설 .. 멋진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말씀 하신 주제의 지향하는 바 - 객체가 실존적인 주체로 서로와의 대화 - 하는 것에 대한 이의는 없습니다.
적극 공감하고 굳이 당위성을 따지지 않더라도 그 의미를 되새김질 하는데 그리 어려운 노력은 필요하지 않을 보편 타당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주제를 논하는데 있어서 익명의 적극적 배제 라는 방법론에는 반대합니다.
우선 반대하기 앞서 실명이나 주체를 인식하기 위한 어떤 식별의 노력이 이제 반세기가 넘어가는 인터넷 역사 속에서 단 한번도 성공한 역사가 없다는 것이고 - 사칭과 공유, 인증 과정의 적법성 등등을 따져봤을때....
또한 말씀 하신 "웹상의 실명" 이라는 것도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히 나눠줄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지 못한 기타 등등의 수많은 익명 아닌 익명들에게도 적용될수 있는 방법론을 고민해봐야겠죠.
그리고 반대하는 이유는 그 실명이라는 시스템이 - 주체를 인지할수 있도록 하는 모든 방법론 - 이 다른 목적을 가지게 된 연휴에는 돌이킬수 없는 사태를 초래할수도 있다는 위험성입니다.
이른바 최진실법? 등등의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실명제에 대한 찬성 논의는 그 위험성을 너무 간과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1. 개인 정보 한건이 15원에 팔리는 나라에서 할 소리가 아니다.
2. 사회에, 시스템에 반대하는 어떤 발언도 용인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할 소리가 아니다.
3. 강제로 인해 시스템을 교정할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불합리하다.
얼핏 생각해봤을 때도 이 세가지 문제가 선결되어야 할것이라 생각들며 이 세가지 문제의 해답은 지금까지의 인터넷 역사가 반증해준다고 봅니다.
인터넷이 활성화 된지는 이제 10년도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하는 실명론은 최진실법의 모순을 벗어날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님이 말하신 3가지의 극복사항은, 블로그라는 실명이 오히려
싸이월드 같은 실명이 뛰어넘지못한 것을 극복할수 있는
길이 될수 있습니다.
그에 대한것은 제가 본문에서 언급한 "신뢰"에 대한 부분을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