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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실 쇼프로는 잘 안보는 편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무한도전에서 좀비 특집이라는것을 한다고 해서 궁금한 마음에 보게되었습니다. 요즘엔 가끔씩 티비를 돌릴때마다 케이블에서 무한도전 류의 쇼프로들을 계속 재방송하니 궁금해서 한번이라도 안볼래야 한볼수가 없더군요

막상 오늘 무한도전을 "챙겨"봤는데 너무 빨리 끝났습니다. 아니 이게 뭐야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저 말고도 허탈했다는 분이 많던데요, 하지만 한편으론 짜고고스톱 안친다 라는걸 보여줬으니 나름 의미는 있는것같았습니다.
생각외로 무한도전에 나오는 설정이 삭막했습니다. 정말 실제 상황을 방불케 하는 그 좀비들을 보면서.. 평소에 제가 생각하던 조중동 좀비가 떠올랐거든요. 여기 등장한 분노 바이러스, 빛을 싫어한다 등의 설정은 28일후 라는 영화에서 온것인데, 저도 이 영화를 예전에 본적이 있어서 어느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그렇게 분장해서 직접 하니 더욱더 리얼하게 느껴지더군요

무한도전에서 좀비 라는 주제가 나온김에, 제가 평소에 생각하는 조중동 좀비란 무엇인가 를 한번 정리해보겠습니다. 무한도전에서 본 조금은 어설퍼보였지만 꽤나 박진감있었던 좀비의 느낌을 살려서 말입니다.

그저 개인적인 생각이니 다른 좋은 생각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0. 조중동, 그들은 어떤존재인가?

조중동은 이미 알려진대로 많은 사람들의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존재입니다. 이들은 정치 세력과 밀착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줄수 있는 자들을 위해서 모든것을 올인하는 집단이라고 할수 있죠. 이들의 무기는 다름아닌 "이성"입니다. 다른말로 하면 "문자를 통한 지식"입니다. 종잇장에 쓰여져있는 차분해보이는 글자들을 매개체로 사람들의 정신을 조종하죠. 언뜻 보면 이들은 매우 지적이고 이성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매우 선동적이고 프로파간다 적인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좀더 쉽게 풀어서 설명해드리자면, 조중동은 자신이 싫어하는 민주화세력에게는 매우 엄격한 잣대를 기준으로 기사를 씁니다. 모든 문제될것같은 것은 다 문제시 삼고, 실제로 문제가 되는것도 오랫동안 사회적인 이슈로 만들기위해 기사를 씁니다. 이것이 바로 선동적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면 프로파간다 적이란.. 그들이 좋아하는 딴나라 세력에게는 매우 유화적이고 부드러운 기사를 내보낸다 라고 생각하시면됩니다. 즉, 민주화세력이 뭔가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하면 조중동은 그걸 국민들에게 설명하지 않으려하고, 도데체 뭘 하려는건지 모르겠다 라는 식의기사를 쓰는반면, 딴나라세력이 시도하는 것들은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리고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 자료들을 쏟아낸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럼 왜 조중동을 읽는 사람들이 그들의 조종에 따라서 움직이 되는걸까요? 그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읽는다 라는 행위부터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종이나 신문에 적힌 글을 읽는 행위는 인간을 폐쇄시킨다

조중동을 보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문자"라는 매체에 매우 친숙합니다. 종이에 적혀진 문자는 원래 "듣기" 이후에 생겨난 하나의 보조수단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것을 종이에다가 적어두면 두고두고 볼수 있거든요.

그런데 인간이 귀로 들리는 말을 종이에 옮겨다 적으면서 인간의 감각의 비율이 변화가 생겨납니다. 귀로 듣는다는것은, 매우 감흥적입니다. 소리의 높낮이와 크고 작음에 따라서 그 느낌도 달라집니다. 듣는다는 행위 자체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감성적인 도구였죠
이런것을 종이에다가 적으면 어떻게 될까요? 내마음을 따뜻하게 해준 부모님의 한마디, 그것을 종이에다가 옮겨적는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을 해보면 됩니다. 정감있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종이에 그대로 받아적어버리는 순간,  부모님의 사랑은 다  공중으로 증발해버리고,  아무런 감정도 없는 표시만 남게됩니다.
왜냐면, 듣는다는 행위는 부모님의 근처에서만 가능한 것인데 반해, 적은것을 읽는것은 부모님의 근처에 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뭔가를 들었을때 우리는 직접 거기에 반응을 해야하는 "사회적약속"에 따라 움직여야 하지만, 읽는 행위는 내가 그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자유롭기 때문에 "거기 대한 충성심"을 가지지 않아됩니다.

이건 마치 할머니가 죽기전에 먹고싶어하는 호빵이야기와 비슷합니다. 어렸을때 힘들고 가난하지만 그한순간 따뜻함과 배부름을 준 호빵을 먹고싶어하는 할머니. 하지만 삶이 얼마남지 않은 지금, 아들 딸들이 준비해온 호빵을 먹은 할머니는 말합니다. 그 호빵맛이 아니라고. 과거에 느꼈던 그 맛은 그 떄의 모든 오감이 총동원되어서 느낀 독특한 호빵맛입니다. 이젠 풍족 해졌고 살기 좋아진 지금의 세상에서 그때의 호빵맛을 느낄수 없는것은 그때와 지금은 너무나도 달라져버렸기 때문일겁니다.
종이에 뭔가를 적는다는것도, 이렇게 다신 재현해낼수 없는 호빵의 맛과 비슷한것입니다.
 
즉, 종이에 적혀있는 문자는 인간의 감정적인 요소들은 모두 제거되어버린 껍질에 지나지 않습니다. 청각이라는 것에서 담겨있던 인간의 감정이 모두 배재되어버리고, 오직 시각에 몰입하게되면서 "이성" 이라는것이 태어난겁니다. 이러한 "시각적인 이성"이 지금의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인간은 5감을 가진 생명체 입니다. 다섯개의 구멍이 뚫린 생명체이죠. 장자의 혼돈칠규에 나오는 혼돈과는 다르게, 인간은 5개의 구멍을 통해서 감정을 고루 분배 하지 못한다면 정신분열증에 걸려버리는 생명체입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시각적인 감각에만 집중시킨 인생을 산다면, 어떻게 될까요?

일단, 문자를 읽기위해서는 눈을 통해서 촛점을 모아야 합니다. 그리고 모여진 촛점을 통해서 계속 한쪽방향으로 움직이는 "운동"을 하게됩니다. 그와 동시에 뇌에서 생각이라는 행위가 이뤄지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고정된 시각"을 배우게되는것이죠.

그리고 다른 모든 감각들을 배재한체 시각에 몰두하다보면, 감각적 폐쇄현상이 나타납니다. 즉 사람이 좀 무뎌진다고 할까요? 죽어있는 시체를 그냥 제3자로 관찰하는것처럼 보게되는 효과가 나타나는것과 비슷합니다. 과거엔 상상도 못한 배를 째서 하는 수술을 자유롭게 한것도 인간이 시각적인 감각을 키우면서 이뤄진것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글을 통해서 이해한것만이 진리인것으로 착각하게되는 지경에 이르게됩니다. 그 예로 우리가 흔히보는 역사책을 들수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기에 전지구의 기온이 떨어진것등의 기후나 자연재해는 거의 배재하고 주로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역사를 쓰고있죠.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것은 전혀 그렇지가 않은데도 말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이론의 시발점이 된 "문자"를 통해서 하나의 생명체같이 이론이 조금씩 추가 발전되어온 것을 감안한다면, 문자의 시각적인 편향성에서 말미암은 결과라고 볼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시각적인 편향성은 다른신문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발견될수 있습니다만,
유독 조중동에게서 더 잘 찾아볼수가 있습니다. 왜그런걸까요?

2. 고정된 시각으로 기사를 쓰는 조중동

그 이유는 조중동이 그걸 교묘하게 이용한다는데 있습니다. 중앙일보 1면은 듭보잡이라는 글을 보면.. 1면의 스샷이 있습니다. 거기엔 "노정부 실세~" 라는 글이 올려져 있는것이 보입니다.  이런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수 있습니다.
더상세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일반적인 사람이 조중동의 글을 보면 어떠한 감각적 폐쇄가 일어나는지 순서대로  표시해보겠습니다.
평소생활하던 주부(모든 오감이 총동원된 생활을 한다.) -> 조중동을 펼친다 (촉감)-> 조중동을 본다(시각적 집중) -> 조중동의 기사를 따라서 눈을 움직이며 읽는다(감각의 폐쇄, 시각 외에 다른 감각은 억제됨) -(여기까지는 모든 신문이 동일한데, 이 다음부터가 조중동이 이용하는 것입니다)-> 읽어들인 내용을 머릿속으로 생각 (폐쇄된 상태에서 정보가 들어오면 그 정보만가 사실인것으로 순간적으로 가정후에 판단하게된다) -> 조중동이 원하는 편향된 시각의 글을 이해 (조중동이 던져주는 고정된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훈련을 하게된다)
글을 읽는다는 행위자체가 원래 모든감각이 배재된 폐쇄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조중동뿐만이 아니라 모든 신문이나 잡지, 그리고 글 읽기의 기본적인 취약점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모든 세상을 접해보지 않고 눈앞에 적혀져있는것만을 통해 오직 문자적인 논리를 통해서 "생각하고 이해"한다는것은 그자체로 편파적이고 폐쇄적인 행위라고 볼수 있습니다.

즉, 인간은 글을 읽는순간 시각을 제외한 모든감각이 퍠쇄됩니다.

이렇게 다른 모든 감각이 폐쇠되어버리면, 인간은 눈으로 들여오는 사건들에 모든것을 집중하게됩니다. 그리고 눈으로 받아들이고 나서 생각나는, 생각하는 것들이 뇌를 지배하게 됩니다. 왜냐면 다른 감각이 개입할수 있는 틈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단편적을 순간적으로 사실로 착각하는 환각현상, 또는 최면효과가 나타나게됩니다.
글을 읽으면서 모든 감각이 마비되고 시각하나가 다른 감각들을 지배하게되면서, 시각이 인간의 온몸을 장악해서 압도하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이렇게되면 사람들은 일종의 최면현상을 겪게 됩니다. 다른 모든 감각을 시각이 장악하면서, 시각으로 흘러들어오는 정보들이 온몸을 지배하는것이죠. 그리고 그 정보들을 뇌로 재현실화 시키면서 그 사실이 사실인것처럼 가정하는 과정을 겪게됩니다.

요약하면 시각의 압도를 통한 최면효과, 그리고 시각으로 들어온 정보들을 통한 환각현상이라고 할수 있겠네요

그리고 글을 읽어나가면서 사람은 눈으로 글자를 따라가면서 고정된 시각을 유지해야 합니다. 글이란 연결되어있는 기다란 선이나 노끈과도 같으니까요. 신체적으로 고정된 시각을 유지하는 행동을 하게되는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시각을 고정시키고 있는 상태에선, 생각 또한 고정되어있는 관점 이라는것을 가지게 됩니다. 글을 읽을 때나 쓸때는 항상 관점이 존재해야 하는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글을 읽는것은 필연적으로 고정된 시각을 가지는 하나의 훈련과 같습니다. 우리가운동장가서 달리기를 하거나 헬스장가서 운동하는것처럼 말이죠.

즉, 읽는다는것은 눈을 한군데 고정해서 보는 운동이자,
어떠한것을 상상할때 고정된 시점으로 생각하는 훈련과정입니다.

그런데 조중동은 그들의 모든 기사들을 악의적으로 딴나라에게 항상 유리한 시각을 가진 내용의 글을 독자들에게 제공합니다. 조중동을 읽는 순간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걸까요? 독자들은 그글을 보고 조중동이 원하는 시각으로 보는 훈련을 계속 하게됩니다. 즉, 읽는다는 행위자체가 매우 고정된 시각을 통한 폐쇄적인 행위이므로, 언론사들은 자신들이 글을 제공할때 왜곡된 시각을 항상 조심하고 피해야 하는것이 정상인데, 조중동은 오히려 그것을 악용해서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국민들이 한쪽으로만 보게끔 훈련시키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겁니다.

즉  조중동은 필연적인 고정된 시각의 읽기 라는 과정을 악의적으로 이용해서 딴나라세력의 정권창출을 위해 사용합니다.

3.조중동 좀비, 그들은 누군가?

자 이제 조중동 좀비와, 우리가 알고 있는 좀비와 한번 비교해보겠습니다.

좀비에겐 우선 개인 이라는것이 없습니다. 조중동을 읽는 사람들도 개인이라는게 없죠. 왜 그런걸까요? 이건 위에서 말한것들과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조중동은 전형적인 권력 지향적인 매스미디어 라는것입니다.
조중동은 모든 기사를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서 써야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을 밝히는 언론이 아니라, 특정기업들을 위해서 덮어주고 까발려야하는 돈에 좌지우지되는 이익집단입니다. 게다가 매스미디어라는 속성까지있습니다. 1:다수 라는 구조의 매스미디어는 필연적으로 소수의 목소리를 모두 담을수 없는 한계성을 타고난것이죠.
그래서 이들이 쓰는 기사들은 국민들 개개인의 이익이나 관심사 보다는, 오히려 딴나라를 위해서 모든 기사들의 내용이 채워져있습니다. 심지어는 독자투고란도 자신들이 입맛에 맞는 글들로 도배되죠.
이렇게 딴나라를 위한 내용과, 시각으로 모든것이 악의적으로 검열당한 글을 사람들이 읽는순간, 일종의 최면효과를 통해서 국민 보다는 "조중동에서 국민을 먹여살려주는 위인로 취급되는 재벌"들을 더 가치있게 생각하게됩니다. 비록 그들이 부패한 사람들이더라도 말이죠. "나 같이 평범한 사람이 범죄를 저지른다면 모르지만, 저렇게 우리나라를 먹여살려준 분이 감옥에 가는건 안될일이지" 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는것도 이때문입니다.
매스미디어에 함몰된 자아 상실형의 인간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처럼 자아가 상실된 인간이 문자미디어에 길들여지면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지니게됩니다. 제가 위에서 설명한것 처럼 문자라는것에 익숙해지면, 인간은 차분해지고 더 나아가서 다른 모든 감각들이 억압받게 되므로 결론적으로 감각적으로 우둔해진다고 말해드렸습니다.
자아를 상실한 인간이 우둔함을 가지게된다면? 바로 자신의 사지가 찢겨나가도 끄떡안하는 좀비가 탄생하게됩니다.

그리고 좀비들의 움직임을 살펴보시면 알겠지만, 이들은 집단행동에 매우 강합니다. 촛불집회같이 산발적인 집회에서 짧게 집단 행동하는것 과는 비교조차 할수없는 강력한 집단행동을 유지해나가는 "딴나라세력"은 산발적인 소수 국민들의 일시적인 모임들과는 비교가 되지않습니다.
그리고 이들 좀비들에게 물리면 좀비가 되어버리는데.. 이것은 딴나라세력들이 돈이라는 것으로 사람들을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것과 비슷합니다. 일단 그들 세력에 발을 붙이면, 발을 뺄수없는 커밍아웃 행동을 해야하는게 그들의 관습 또한 그들의 번식방법이기도 합니다. 국민들이 모이는 집회는 내가 참가할 자유를 가지지만, 딴나라 세력은 그렇지 못하죠. 일종의 조폭과 비슷합니다. 탈퇴하려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발을 뺄수 없는곳입니다.
딴나라세력에 버금가는 조중동 좀비들은 어떨까요?
조중동 좀비들은 우선 값싼 조중동을 사서 봅니다. 아니, 제일 싸니까 어쩔수 없이 끊어보게됩니다. 딴나라세력들이 자신들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데 쓰는 방법과 똑같죠. 그리고 조중동을 한번 받아보기 시작하면 발을 뺴기가 상당히 힘듭니다. 그들은 매우 끈질기죠. 신문을 파는 분들이 끈질긴게 아니라, 조중동이 그렇게 시장을 만들어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끈질기게 따라와서 인간을 물어 뜯어먹음과 동시에 감염되는 좀비.. 그리고 끈질기게 구독하도록 권유해서, 돈이라는 값싼 바이러스를 통해서 감염시키는 조중동... 이둘은 너무나도 닮아보입니다.
Posted by 리카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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